<오이디푸스>와 책임

“오이디푸스와 책임짐에 관하여”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입니다. 그는 왕자로 태어났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산속에 버려집니다. 버려진 오이디푸스는 목동에게 발견되어 요행히 살아남아 이웃나라인 코린토스 왕국의 왕자로 성장합니다. 그 후 자신에 관한 신탁 내용을 안 오이디푸스는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를 친부모로 착각하고 이 신탁이 실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코린토스 왕국을 떠납니다. 코린토스를 떠난 오이디푸스가 보이오티아로 가는 길에 마주친 일행과 갈등 끝에 살인을 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인 라이오스였습니다. 그 후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되고 또 테베의 왕비이자 어머니인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자식 넷을 낳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오이디푸스와 관련한 신탁을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후 신탁대로 남편을 살해한 자가 자신의 아들이고, 자신이 아들과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낳았다는 사실에 절망한 이오카스테는 자신의 침실에서 목을 매 자살합니다. 오이디푸스 역시 신탁대로 자신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두었고,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녀의 침실로 달려가 이오카스테의 시신을 껴안은 채 울부짖으며 절규합니다.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봐서는 안 될,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봤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하는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 그리고는 이오카스테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자신의 두 눈을 찔러 스스로 장님이 됩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우리에게 책임에 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책임(責任)은 어떤 일의 결과에 대하여 지게 되는 의무나 부담입니다. 그리스신화에서 인간의 행위는 대개 신의 섭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필요가 없습니다. 오이디푸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이디푸스에게서 벌어진 모든 일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 관한 신탁이 실현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과 상관없이 그에 관한 신탁은 실현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디푸스는 이오카스테의 황금 브로치로 자신의 두 눈을 찌름으로써 자신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스스로 알고자 했으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한 자신의 무지에 관해 스스로 책임을 물은 것입니다. 


한국교회 타락 원인 중 하나는 무분별한 성장주의입니다. 복음화의 탈을 쓴 성장주의 안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탐욕입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교회 타락에 성장주의자들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장주의를 주도해 온 이들 중 스스로 한국교회의 타락에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는 이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은 교권을 장악하기 위해 현대판 성직매매인 금권선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책임이 없는 스스로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었던 오이디푸스를 생각하게 됩니다. 막스 베버는 “권위가 없는 책임은 있을 수 없고, 책임이 따르지 않는 권위도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개신교회 선거의 계절이 다가옵니다. 타락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서 한국교회는 책임 지지 않는 자들, 성직매매를 시도하는 이들의 손에 교권을 쥐어주어서는 안 됩니다.